어제도 복용했는데...흔히 먹는 진통제가 항생제 내성 일으킨다고?
남호주대 연구팀 흔한 9개 비항생제로 연구 “박테리아 유전체 돌연변이로 항생제 무력화” 노인요양시설에서 복합 처방 많은 약물 관찰
감기 등에서 자주 쓰는 해열진통제가 유발 “내성 줄이려면 비항생제·노인시설 관리 필요”
’항생제 내성‘은 세계보건기구(WHO)가 2019년 ’글로벌 보건위협‘으로 규정했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다. 관련 사망자가 2019년 495만명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왔을 정도다. 그 원인으로는 임상과 농업 환경에서 항생제의 부적절하고 과도한 사용이 꼽힌다.
병원체가 특정 항생제에 내성이 생기면 해당 약물이 듣지 않게 된다. 그럴 경우 의료진은 더 강한 항생제를 쓰든지, 심하면 다른 치료법을 찾아야 한다. 결국 치료 방법의 선택지를 줄이고 중증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뿐 아니라 사회적 비용 부담도 늘리게 된다. 이에 따라 보건의료계와 의료 당국은 항생제 내성을 줄이기 위해 항생제 오남용을 막는 데 주력해왔다.
“비항생제도 항생제 내성 유발”
하지만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항생제뿐 아니라 비(非)항생제 약물도 항생제 내성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내용은 호주 애들레이드의 남호주대(UniSA) 임상·보건과학 연구팀이 과학학술지 네이처 8월 25일자에 게재한 논문에 실렸다.(제목: The effect of commonly used non-antibiotic medications on antimicrobial resistance development in Escherichia coli)
연구팀은 노인요양시설에서 흔히 사용하는 9가지 비항생제 약물이 대장균에서 항생제 내성 돌연변이를 증가시키는지를 조사했다. 9가지 약물은 해열진통제 이부프로펜·아세트아미노펜·디클로페낙, 부종·고혈압에 쓰는 이뇨제 푸로세미드, 당뇨약 메트포르민, 고지혈증약 아토르바스타틴, 오피오이드계 진통제 트라마돌, 불면증약 테마제팜, 비충혈제거제 슈도에페드린 등이다.
비항생제 약물의 항생제 내성 유발을 확인하기 위해 연구팀은 항생제 시프로플록사신(ciprofloxacin)과 미생물 대장균(E.coli)과의 상호반응을 관찰했다. 시프로플록사신은 뼈·관절, 호흡기, 비뇨기, 피부, 복강 등 다양한 부위의 감염증에 쓰는 광역 스펙트럼 항생제로 화학적으로는 플루오로퀴놀론계에 속한다.
흔한 해열진통제가 세균 돌연변이로 내성 유발
연구 결과, 이부프로펜과 아세트아미노펜은 항생제 내성을 일으키는 세균 유전체의 돌연변이 빈도를 유의미하게 증가시키고, 시프로플록사신 내성을 높은 수준으로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두 가지 비항생제를 동시에 쓴 경우 환자의 돌연변이율과 시프로플록사신 내성이 더욱 증가한 것으로 관찰됐다.
왜 비항생제가 항생제 내성을 일으키는 것일까. 그 비밀은 유전체의 돌연변이에 있었다. 대장균을 대상으로 전체 유전체 DNA 염기서열을 해독하는 ‘전장 유전체 시퀀싱(Whole Genome Sequencing:WSG)’을 해봤더니 비항생제를 복용한 환자의 체내 대장균에서 항생제 내성에 관여하는 유전체인 GyrA, MarR, AcrR의 돌연변이가 발견됐다.
유전체 분석 결과, 돌연변이가 항생제 무력화
플루오로퀴놀론계 항생제는 DNA 복제와 전사를 돕는 DNA자이라제(또는 자이레이스)라는 효소를 공격해 병원체의 성장을 막는다. GyrA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이 종류 항생제의 DNA자이라제 공격을 막아 내성이 생기게 된다. MarR와 AcrR의 돌연변이는 박테리아가 몸속에서 항생제를 외부로 빼내는 펌프기능을 강화함으로써 항생체의 효과를 떨어뜨려 내성 생성에 기여한다. 이 돌연변이들은 작용은 막고 세균 몸에서 배출은 도와주면서 항생제를 무력화한 것이다.
노인요양시설의 비항생제 다제 복용 문제점 지적
비항생제의 항생제 내성 유발은 항생제와 비항생제 약물이 모두 빈번하게 투약되는 노인요양시설에서 두드러지게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항생제 내성을 줄이려면 그동안 간과됐던 비항생제 약물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노인요양시설의 다제 약물 복용의 위험성을 재평가하고 투약 관리를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복합 질환을 앓는 환자가 대부분이라 수많은 약물을 동시 처방할 수밖에 없는 노인 시설의 문제점을 지적한 셈이다.
“이런 종류의 연구로는 처음”…흔히 쓰는 약물이라 충격적
남호주대 홈페이지는 8월 26일 ‘일반적인 진통제가 항생제 내성과 연결돼 있다(Common painkillers linked to antibiotic resistance)는 제목으로 이 논문의 네이처 게재를 소개하면서 “이런 종류의 연구로는 처음”이라고 평가했다. 연구 대상이 된 9가지 비항생제 약물은 고혈압·당뇨 등 일반적인 성인병은 물론 감기 등에 흔하게 쓰이는 약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