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의 당도 당이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당과의 전쟁’이 맹렬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WHO를 시작으로 영국, 유럽, 미국 정부는 국민들이 너무 많은 당을 먹고 있다고 선언하고 식사에서 당을 줄이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고안하고 구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당은 대부분 설탕입니다. 설탕은 포도당과 과당이 합쳐진 당으로, 2개의 당이 합쳐진 상태라 해서 이탄당이라고 합니다. 설탕은 너무 간단하게 몸에 흡수되기 때문에 많은 양을 한꺼번에 먹기 쉬어서 우리도 모르게 과잉섭취상태가 됩니다. 그 결과 비만, 당뇨병, 심장병 등의 여러 가지 질환이 생깁니다. 이런 증가 추세가 엄청나게 빠른데, 이걸 그대로 놔두면 머지않은 장래에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리고 그 사회경제적 부담이 너무 커서 예방을 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설탕을 줄여야 한다는 것은 공감하는데, 과일의 당은 별로 신경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 설탕이 나쁘다고 하면 대부분 청량음료나 과자나 디저트에 첨가되는 당이 나쁘다고 생각해서 피하려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경각심이 과일주스와 과일에 이르면 무장해제가 됩니다. 과일주스와 과일에 있는 당은 첨가당과 달리 이롭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과일의 당도 일단 우리 몸에 들어와 소화가 되고 흡수가 되면 여러분이 커피에 타 먹는 하얀 설탕과 똑같이 행동합니다. 혈당이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두 가지 당이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물론 과일은 당(설탕, 포도당, 과당) 말고도 풍부한 섬유질과 미네랄, 비타민을 포함하고 있어 이점이 많습니다. 사과처럼 섬유질이 많은 과일을 생으로 드시면 혈당이 천천히 올라가는 이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과일의 좋은 점에만 치우쳐서 과일도 엄연히 당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정도 이상으로 먹는다면 당뇨병 전 단계에 있는 사람이나 당뇨병 환자는 매우 좋지 못한 성적표를 받게 됩니다.
여름만 되면 당뇨병 환자와 한차례 전쟁
여름철이 되면 당뇨병 환자의 대부분은 혈당이 오르기 시작합니다. 당화혈색소를 보면 여름과 겨울이 성적이 제일 좋지 않습니다. 겨울에는 추워서 운동 부족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름에는 과일 때문에 그렇습니다.
과일은 그냥 좋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당뇨병 환자들도 보약 먹듯이 즐겨 먹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식후에 과일을 바로 먹는데, 이것은 정말 혈당이 올라가라고 기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과일을 정상인이 매일 한 두 개를 먹는다고 해서 당장 크게 문제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과일을 먹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이, 그리고 아주 꾸준히 먹는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게다가 당뇨병 환자나 당뇨병 전 단계인 사람에게는 이 정도의 과일도 큰 부담이 됩니다. 블루베리가 몸에 좋다고 10개에서 20개를 갈아서 요구르트에 타서 매일 복용하면 혈당 조절은 물 건너갑니다. 감이 좋다고 매일 두 개씩 드시고 온 분도 있는데, 이 경우도 혈당치는 천장을 뚫었습니다.
과일 없이 못 산다면 이렇게
1. 과일은 식사와 식사 사이에 드세요
과일을 식후에 디저트로 먹게 되면 혈당이 2단 점프를 합니다. 우리 몸에 탄수화물(곡류 등) 식사가 들어오면 인슐린이 나와 혈당을 낮추게 됩니다. 식사시간이 끝날 무렵 인슐린도 하강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에 다시 당류가 많은 과일을 먹게 되면 인슐린이 다시 나와야 합니다. 가끔 그러면 별 문제가 아닐 수 있으나 계속 이렇게 반복되면 혈당이 급기야 오르기 시작합니다. 과일은 식사와 식사 사이에 간식으로 먹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점심을 먹고 2시간이 지나면 혈당도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는데 이때쯤 뇌도 지치고 몸도 지칩니다. 그 때 사과 반쪽 정도나 포도 몇송이가 들어가면 혈당이 소폭 올라 뇌는 활력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공복감도 덜해서 저녁을 많이 먹는 것을 피할 수도 있습니다.
2. 과일을 주스로 드시지 마세요
과일에는 섬유질이 풍부해서 당이 몸에 흡수되는 것을 지연시킵니다. 그래서 과일을 통째로 씹어먹으면 일반적으로 당이 천천히 올라갑니다. 이 점은 당뇨병 발병과 혈당 조절에 있어 아주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천천히 흡수하게 할 것!
그런데 과일을 갈아먹게 되면 아무리 좋은 기술을 써서 섬유질의 손상을 최소화하던 간에 당은 섬유질에서 이탈하여 홀로 존재합니다. 이렇게 자연적인 관계를 벗어나 홀로 존재하는 당을 유리당(free sugar)이라고 합니다. 유리당은 혈당을 굉장히 빨리 올립니다. 요즘 과일은 색깔과 냄새와 촉감과 맛을 음미할 수 있게 통째로 천천히 드셔야 합니다.
3. 식사대용으로 과일을 드시지 마세요
밥을 먹지 않으면 당뇨병이 낫는다는 등의 근거가 희박하고 평생 지속할 수 없는 이설에 현혹되어 곡류를 아예 먹지 않고 한 끼나 두 끼 대용으로 과일을 드시는 분이 가끔 있습니다. 절대 그렇게 하지 마세요. 과일에는 포도당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당이 있습니다. 과일의 특징인 과당은 조금만 많이 들어와도 포도당과 달리 우리 몸에 해로운 작용을 많이 합니다. 과당은 지방간을 유발하고, 고중성지방혈증을 일으키고, 혈당을 올리고, 장내 미생물 분포를 나쁘게 해서 만성적인 염증을 일으킬 수 있고, 심지어 요산 수치도 올려 심혈관질환의 위험도 높게 합니다. 그래서 과일은 간식이어야지 주식으로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곡류 위주의 잡식성 생명체이지 과일만 먹고사는 요정이 아닙니다.
4. 혈당이 염려된다면 되도록 딱딱한 과일을 드세요.
복숭아나 수박처럼 물렁한 과일은 물이 많고 과육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단위 무게당 칼로리는 비교적 적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물렁한 과일을 먹는 것이 혈당 조절과 당뇨병 예방에 유리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딸기, 복숭아, 수박은 물이 많고 먹기 좋아서 앉은 자리에서 아주 많이 먹을 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섬유질이 촘촘하지 않아 과일의 당이 굉장히 빨리 흡수되어 혈당을 급격하게 높입니다. 혈당이 급격히 높아지면 인슐린도 따라서 급격히 올라가서 췌장에 부담을 주고 살도 찌게 됩니다.
당뇨병 환자는 사과나 배를 하루에 한 개 정도 드시고, 당이 빨리 흡수되는 복숭아·수박·귤·감·포도 등은 가끔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바나나, 망고, 파인애플 등의 열대과일은 당 함량이 매우 높습니다. 정상인은 꼭 이렇게 조심해야 할 것까지는 없으나 과일이 만병통치의 보약은 아니며 많이 먹으면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아시고 하루에 한두 개 정도의 간식으로 만족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당뇨병으로 고생한 세종대왕과 오늘을 사는 우리 중 누가 과일을 더 많이 자주 먹을까를 생각해보세요.
<연세조홍근내과 원장>
원문보기:
http://m.weekly.khan.co.kr/view.html?artid=201607181719021&code=115&med_id=weekly#csidxebd1ce74ad41843b1fb27fe5d7156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