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는 중요한 상업용 과일이다. 바나나의 경작지는 열대 지방이지만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소비되는 과일 중 하나다. 농작물 수입이 제한되던 1970~1980년대에는 바나나 한송이당 가격이 당시 기준으로 1만원 정도로 굉장히 비싼 과일이었다. 선물용으로 또는 아이가 시험을 잘 치거나 입학시험에 합격했을 때 맛볼 수 있는 귀한 과일이었다. 우루과이라운드(1993년) 후에 바나나 수입이 자유롭게 되면서 가격이 많이 싸져서 지금은 흔하게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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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는 풀에서 나온다
바나나 화보 사진을 보면 높이가 5~6m 되는 나무에 수십 개의 바나나가 송이를 이루어 여러 뭉텅이 붙어 있는데, 한 나무에 100여 개가 달린다고 한다.
사실 바나나나무는 나무가 아니라 풀이다. 바나나나무몸통은 나무 몸통과 다르게 여러 개 풀줄기가 서로 꼬여 이루어진 가짜 줄기여서, 바나나가 나무에서 열리는 과일이라고 보기 힘들고 풀에서 나는 채소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관습적상식적·영양학적으로 볼 때 바나나는 그냥 과일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난하다. 바나나는 다른 작물과 다르게 유전적으로 다양하지 않다. 유전적으로 여러 종류가 있어야 병충해에 강한데, 현재 거의 모든 바나나는 한두 종류의 조상에서 나왔다고 추정된다.
바나나의 비극
바나나를 처음 재배한 곳은 남아시아로 추정하고 있다. 기원전 이미 바나나의 존재가 그리스, 로마, 중동국가의 문서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 침공에 나섰을 때 현지 사람들이 설탕과 바나나 먹는 것을 목격했다. 유럽인들은 바나나를 아프리카의 스페인령 카나리아 군도에서 키우다가 신대륙 침략후에 서인도제도 히스파니올라섬에서 재배했고, 점차 남미 본토로 확장했다. 새로운 곳에서 재배를 성공해 확장되면서 19세기 즈음에 미국에 상륙했다.
바나나는 유전적으로 병충해에 대단히 취약하다. 따라서 강력한 균을 만나면 전체 종이 다 멸종할 수 있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데, 1950년대 ‘파나마 병’이라는 곰팡이 감염이었다. 당시 세계를 주름 잡던 바나나는 현재의 캐번디시(Cavendish)종보다 훨씬 달고 맛있는 그로미셸(Gros Michel)종이었는데, 푸사리움 옥시스포룸(Fusarium Oxysporum)이라는 흙에서 사는 곰팡이에게 속수무책으로 공격받아 전멸하였다. 이 곰팡이는 바나나뿐 아니라 멜론, 고구마, 감자, 토마토 등을 공격하는데, 다른 작물과 달리 바나나는 유전적 다양성이 없어 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그 후 캐번디시종으로 바꾸어서 재배하고 있지만 이 품종 역시 유전적으로 균질하여 병충해에 취약하다. 1990년대 이후에 ‘파나마병’을 일으킨 곰팡이의 변종인 TR4(Tropical Race 4)가 출현하여 캐번디시종을 또다시 괴롭히고 있다. 많은 과학자들은 캐번디시종도 가까운 미래에 멸종될 것이라고 한다. 바나나 멸종설에는 바로 이런 배경이 있다.
아프리카인은 달지 않은 바나나 즐겨
간혹 혈당 높은 사람들에게 바나나를 피하라고 하면, “열대 사람들은 늘 바나나를 튀겨 먹고 구워 먹고 해도 당뇨병이 생기지는 않는데 왜 우리는 바나나를 피해야 하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먹는 바나나는 우리가 먹는 바나나와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상업적으로 한국에 수입되는 바나나는 대부분 캐번디시종이다. 포도당, 과당, 설탕이 많아서 달다.
그런데 열대 사람들이 먹는 바나나는 당보다 녹말이 훨씬 많은 플랜틴(Plantain)종이다. 전 세계에서 재배하는 바나나의 85%는 플랜틴종인데, 대부분 아프리카나 남아시아 국가에서 재배되어 그 나라 사람들이 소비하고 수출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잘 모를 뿐이다. 이 바나나는 우리의 쌀처럼 그들의 주식으로서 달지 않으며, 날로 먹지 못하고 굽거나 볶거나 튀기거나 하며 밀가루처럼 가루로 만들어서 먹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수출되는 상업용·간식용 바나나인 캐번디시종은 다르다. 훨씬 부드럽고 달다. 전체 열량 중 90% 내외가 탄수화물이기 때문에 열대 사람들이 먹는 주식용 바나나보다 훨씬 혈당을 올릴 위험이 많다.
바나나의 영양학
캐번디시종 작은 바나나 1개(90g)는 90kcal정도 열량을 낸다. 3개를 먹으면 밥 한 공기의 열량과 비슷하다. 따라서 살빼기 위한 용도로는 좀 과하다. 탄수화물이 전체 열량 중 93%를 차지한다. 탄수화물 23g 중에 녹말이 5.4g, 설탕·맥아당·과당·포도당 등의 당류가 12.4g이고, 식이섬유소가 2.6g 정도이다. 과일 중에서도 당류가 많은 편이다. 당뇨인은 조심해야 한다.
식이섬유소 양은 하루 섭취 권장량의 11% 정도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뉼린이라는 기능성 섬유소가 아주 많은 대표적인 식품이다. 따라서 변비와 고지혈증, 당뇨병 예방에 좋다고 한다. 바나나에는 혈압 강하에 좋은 칼륨이 많은 편이고, 비타민C가 하루 권장량의 15%, 비타민B6가 하루 권장량의 19% 정도로 많이 들어 있다. 이런 이유로 가끔은 바나나가 항노화·항염증, 면역력 증진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음식에 어떤 기능을 하는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그 음식을 먹으면 바로 병이 예방되거나 치유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바나나와 당뇨병
바나나는 설탕과 포도당이 많고 빨리 많이 먹을 수 있어 당뇨병에 불리하다. 당지수가 45~70으로 보통이거나 약간 높은 편인데, 당부하지수는 높지 않다. 천천히 1개만 먹으면 혈당을 크게 올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상인은 가끔 간식으로 적당히 즐길 만하다. 그러나 급격한 혈당 상승을 제어하지 못하는 당뇨인이 바나나를 먹게 되면 혈당이 급격히 올라가므로 되도록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바나나의 식이섬유소가 당류의 빠른흡수를 억제하는데 바나나를 믹서로 갈아 먹으면 섬유소에서 탈출한 자유당(free sugar)이 급격히 혈중에 흡수되어 정상인에게서도 혈당을 높일 수 있다. 당뇨인은 바나나를 먹어야 할 절박한 사정이 없다면 피하는 것이 좋고, 정상인은 바나나를 믹서에 갈아 먹지 말고 가급적 온전하게 씹어 먹는 것이 좋다.

조홍근 당뇨와 혈관질환의 전문가로 예방과 치료에 전념하고 있는 내과 전문의. 주요 매체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게재하며, 의사는 물론 일반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정기적으로 질환의 메커니즘을 쉽게 풀어 쓰는 글을 쓰고 있다. 《죽상동맥경화증과 지질대사》, 《대사증후군》, 《내몸 건강 설명서》 등의 저서가 있다.
/ 글 조홍근(내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