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에 물려 사람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인터넷 공간을 통해 많은 격론이 오고가고 있습니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사이 갈등도 더욱 심각해 졌습니다.
저는 순전히 의학적 관점에서만 개에 물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짚어 보겠습니다. 구글검색을 해보니 이미 많은 글들이 올라와 있더군요. 저는 미국 의학도서관을 검색했습니다. 2015년 독일 차리테(Charite) 의대의 카린 로테(Karin Rothe)교수란 분이 자세하게 ‘Animal and human bite wound(동물과 사람으로 인한 교상)’란 제목의 리뷰 논문을 발표했더군요. 교상이란 물린 상처를 말합니다. 오늘 칼럼은 이 논문을 근거로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동물에 물리는 일이 흔합니다. 미국의 경우 개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이 최소 1억마리를 넘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마다 인구 10만명당 200명 꼴로 물린다는군요. 동물에 물려 병원을 찾는 환자만 해마다 80만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개가 고양이보다 훨씬 잘 뭅니다. 미국내 동물 교상의 85-90%가 개인데 비해 고양이는 5-10%로 작았습니다. 확실히 수컷이 잘 뭅니다. 암컷보다 3배나 많이 뭅니다. 그런데 잡종과 순종간 차이가 없다고 하는군요. 혈통이 좋은 개나 나쁜 개나 무는 비율은 똑같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개는 혈통이 좋으니 안심하세요”란 말은 과학적으로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둘째, 고양이가 개보다 위험할 수 있습니다. 고양이는 개보다 무는 비율은 작습니다. 그러나 한번 물면 상처가 곪을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이 논문은 고양이는 30-50%에서 상처가 곪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개는 5-25%입니다. 고양이의 이빨이 훨씬 가늘고 뽀족해 조직 깊숙이 침 속의 세균이 침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물리는 사람들의 성별입니다. 개는 남자를 잘 무는데 고양이는 여자를 잘 문다고 합니다. 거의 2배가 난다는군요.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남자는 개를, 여자는 고양이를 조심해야겠습니다.
셋째, 동물에게 물리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보듯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일은 아니란 뜻입니다. 동물의 교상은 칼에 찔리는 것과 비슷한 상처를 만듭니다. 뾰족한 동물의 이빨이 칼처럼 조직 깊숙이 박힌다는 뜻입니다. 겉으로 볼 땐 피도 나오지 않고 물린 자국만 서너개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훨씬 위험합니다. 많은 외상학자들이 동의하는 사실은 칼에 베일 때보다 찔릴 때 더 감염이 잘된다는 사실입니다. 베일 경우 출구가 열리고 피가 나와 세균이 몸 밖으로 배출될 기회가 있지만 찔릴 경우 상처 부위가 좁아 세균이 나오지 못하고 조직 깊숙한 곳에서 곪다가 혈관을 통해 잘 퍼지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개를 비롯한 동물의 침 속엔 많은 세균들이 있습니다. 특히 공기가 없는 곳에서도 살 수 있는 혐기성 세균이 문제입니다. 사람의 조직 안에서 분열 증식하면서 곪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한 경우 이번 사건의 경우에서처럼 패혈증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한자어 그대로 풀어쓰면 피가 썩는다는 뜻입니다. 세균이 전신의 혈액을 타고 돌아다닌다는 뜻입니다. 의학적으로 초응급 상황입니다. 일단 발생하면 혈액응고장애와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최소 30%가 생명을 잃습니다.
그렇다면 동물에 물렸을 때 어떻게 해야할까요?
포비돈 등 소독약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소독보다 중요한 것은 상처를 최대한 물로 씻어내는 것입니다.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세균의 양을 줄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독이나 항생제가 아닙니다. 세균에 한꺼번에 다량으로 노출되거나 피부의 썩은 조직 등이 남아 몸 속에서 세균이 증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아무리 강력한 항생제를 투여해도 패혈증으로 숨질 수 있습니다. 소량의 세균이 들어오면 우리 면역이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꺼번에 많이 들어오면 건강한 사람도 견디지 못합니다.
이것은 암세포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기 발견하면 완치할 확률이 높은 이유입니다. 수술로 도려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잔류 암세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이 적으면 우리 면역이 이겨냅니다. 하지만 한참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하면 수술로 잘라내도 남아 있는 미세잔류 암세포의 양이 워낙 많아 재발하고 생명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세균이든 암세포든 질병의 발생에서 양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동물에게 물리면 깨끗한 수돗물로 부위를 노출시켜 가볍게 씻어줍니다. 굳이 소독하지 않아도 됩니다. 밴드나 붕대로 꾹꾹 누르거나 덮어주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오히려 물린 자리로 진물 등 체액이 배출되는게 훨씬 좋습니다. 실제 물린 자리가 일부 찢어져 있어도 의사들은 일부러 꿰매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처를 열어두고 가느다란 도관을 넣어 생리 식염수로 씻어주는 치료를 합니다. 출구를 열어두고 상처부위 압력을 줄여줘야 세균이나 고름 등 감염원의 배출이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패혈증은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케이스 리포트로 의사들이 보고하는 정도입니다. 동물에 물렸다고 모두 패혈증이 생기는 것은 아니란 뜻입니다. 다만 상처를 주의깊게 관찰할 필요는 있습니다. 만일 물린 자국이 발갛게 붓고 아픈 증세가 24시간 이상 지속되거나 점점 심해지면 빨리 병원을 찾아야합니다. 참고로 동물 교상의 치료는 외과에서 합니다.
특히 평소 면역력이 약한 분들은 주의해야 합니다. 심한 당뇨와 간경변, 수술로 비장을 떼어낸 사람, 인공심장판막이 있는 분, 이식수술후 거부반응 막기 위해 면역억제제 쓰는 분, 항암치료를 받는 분들이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덧붙입니다. 저는 이번 사건으로 개주인들이 좀더 각성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는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개를 혐오하는 문화가 확산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번 논문을 보니 놀랍게도 사람이 사람을 무는 경우도 제법 많았습니다. 2008년 Emerg. Nurse란 논문인데 도시 지역의 경우 전체 교상의 20%가 사람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주로 성범죄 등으로 일어나는 일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번 리뷰 논문을 보니 사람이 물었을 때 상처가 곪을 확률이 15-25%나 됩니다. 고양이(30-50%)보다는 낮았지만 개(5-25%)보다 높았습니다. 개가 특별히 위험한 동물은 아니란 뜻입니다. 아무쪼록 사람과 동물이 평화롭고 안전하게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빕니다.
원문보기 http://aftertherain.kr/%EA%B0%9C%EC%97%90-%EB%AC%BC%EB%A0%B8%EC%9D%84-%EB%95%8C-%EC%95%8C%EC%95%84%EC%95%BC-%ED%95%A0-3%EA%B0%80%EC%A7%80-%ED%99%8D%ED%98%9C%EA%B1%B8-%EC%B9%BC%EB%9F%BC/